에스팩토리는 성수동에 위치, 대지면적만 약 9,917m²에 달하는 총 3층 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오래된 섬유공장, 자동차 공업소 등 4곳을 함께 리모델링해 17년 오픈했다. S는 이야기, Factory는 말 그대로 공장. 이야기를 함께 만들고 즐기는 공장인 셈이다. 전시회가 열리는 스페이스, 쇼핑 공간, 다양한 가게들이 입점해 있는 거리, 레스토랑이 한 건물 안에 모여 있다. 성수동의 축소판이랄까. 그런 에스팩토리에서 조금 특별한 전시를 준비했다. 바로 ‘색’에 관한 전시다.

 

 

:ⓒ Kristina Makeeva  

 

색에 대해 평소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본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색들은 특별하게 우리 삶 속에서 배경으로, 또는 어떤 기능을 하며 꿋꿋이 빛나고 있었다. IXDesign은 때문에 Objet 코너를 통해 지난 몇 달 간, 블루, 레드, 블랙, 화이트, 옐로우 등 다양한 컬러의 역사와 쓰임에 주목해온 바 있었다. 컬러는 사회적이며, 동시에 아름답다. 컬러는 사회를 반영하며, 또 동시에 사회를 예측케 한다.
 

에스팩토리의 이번 전시 뮤지엄 오브 컬러(Museum of Colors) 또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컬러에 대한 5명의 작가들의 상상력이 담긴 96점의 작품, 또 컬러를 주제로 꾸민 가상공간이 결합된 특별한 팝업 뮤지엄의 형태로 기획되었다. 검은색과 빛을 시작으로 천천히 미술관의 초대에 응해 한 발자국씩 걸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좋아하는 색이 하나쯤 더 생겨나 있을지도 모른다.
 

 

 

 

블랙 광장

 

블랙 광장은 에스팩토리의 이번 전시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공간이다. 검은색은 르누아르에 의해 ‘색의 여왕’이라 불렸다. 이런 검은색의 특성을 살려, 에스팩토리는 ‘여왕의 초대장을 받아 참석한 만찬’에 온 듯한 분위기를 관객들에게 선사하기로 했다. 긴 테이블에 놓인 식기와 화병, 배경에 걸린 Kristina Makeeva 작가의 그림까지. 모든 색을 아우르는 동시에 빛의 깊이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검은색. 마키바 작가의 그림은 검은 배경 위에 멋지게 피어났다.
 

 

 

 

 

오로라 숲

 

여왕과의 만찬을 마치고 가는 길에, 우리는 빛으로 장식된 오로라 숲을 만나게 된다. 빛이 반사되고 부딪혀 퍼지면서 영롱하게 번지는 색채는 마치 오로라처럼 관객들을 반겨준다. 두번째 섹션에 참여한 윤새롬 작가는 아크릴에 섬유 염색 기법에서 차용한 수공예적 과정을 거쳐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다. 작가만이 낼 수 있는 묘한 색채 속을 거닐며 관람객들은 색에서도 텍스쳐(texture)를 읽어내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컬러 유니버스

 

세계적인 컬러 연구소 ‘팬톤(PANTONE)’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탄생한 공간, 색의 우주다. 관람객은 이곳에서 팬톤 컬러가 탄생하고 실제로 사용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다. 팬톤의 컬러 측정 시스템, 팬톤 컬러 키트 등을 통해 색채가 의미하는 것이 꼭 색채만은 아님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더불어 팬톤의 컬러 IQ 테스트를 통해 컬러 지능을 알아보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지난 12월 발표한 ‘2020 오늘의 컬러’는 전세계 최초로 에스팩토리에서 실물로 전시되기도 했다.
 

 

 

 

시인의 정원

 

한 층 내려가면 싱그러움을 가득 담은 공간이 펼쳐진다. ‘시인의 정원’은 젊음과 성장, 생명과 회복을 상징하는 초록을 테마로 했다. 중세 영어 Grene에서 유래된 초록색의 이름은 풀(grass), 자라다(grow)와 함께 봄의 이미지를 공유한다. 이 초록 정원에서 잠시 쉬어가자. 새파란 나무에 더한 시 한 구절은 삭막한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름의 위로를 선사한다. 황인찬, 함인복, 박소란 등 주목받는 시인 10명의 아름다운 시를 영상으로 소개 받을 수 있다.
 

 

 

 

스카이 아일랜드

 

바다를 좋아하는 이는 많다. 그러나 이처럼 꾸준하게 기록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바로 린 더글라스(Lynne Douglas) 말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듯한 푸른 빛이 끝없이 펼쳐진다. 세상의 모든 파란이 담긴 곳,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이 이렇게나 많은 색을 담고 있었구나.” 싶어진달까. 스카이 섬의 빛이 떠오르는 안개 낀 아침, 태양빛이 뜨거운 한낮, 별이 빛나는 해질녘. 이 섬의 모든 아름다움을 작가의 메모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컬러 스트리트

 

컬러 스트리트는 옐로를 베이스로 한 톡톡 튀는 색의 거리다. 팝아티스트 아트놈(Artnom) 작가가 참여, 다양하고 경쾌한 색상으로 만들어낸 거리는 작가가 주창하는 재미주의(Funism)가 무엇인가를 오롯이 느낄 수 있게 한다. 아트놈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박생광 화가의 채색작품에 강렬한 끌림을 느꼈고, 이는 후에 그가 아트놈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해 작업하는 데에 큰 기반이 되었다.
 

 

 

레드 캐슬, 그리고 꿈의 미로

 

노란 간판 사이를 헤쳐나가고 나면 붉은 성을 곧 만나게 된다. 레드는 빛과 색의 삼원색에 모두 속하는 기본색, 동시에 인간이 자연에서 발견한 가장 초기의 유채색이다.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붉은색과 레드 캐슬, 그 벽에 걸린 크리스티나 마키바 작가의 작품은 마법의 성에 당도한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마법이 우리 삶에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일상의 문제를 잠시 잊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선함의 승리를 믿게 되기를 추구합니다.” 작가의 말이다. 붉은 성을 지나면 보이는 곳은 꿈의 미로다. 핑크 컬러를 테마로 신비로운 꿈 속으로 향하는 입구를 연출했다.
 

 

 

 

컬러 시티

 

컬러 시티에서는 동화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컬러를 담은 도시를 만나볼 수 있다. 그야말로 컬러들의 축제, 빛의 향연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배경은 이스탄불이다. 작가 예너 토룬은 이스탄불 도심 공업지대와 개발 지역 사이에서 보석 같은 건축물을 발견해내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를 ‘컬러 헌터’로 소개한다. 회색 도시였던 이스탄불의 무채색 건물들 사이에서 발견한 강렬한 컬러는 순식간에 그를 스타 작가로 만들었다. 그는 사진에 후보정을 많이 가미하지 않는다. 더 좋은 순간이 올 때까지, 그저 기다릴 뿐이다.
 

 

 

전시의 퇴장로에서, 우리는 좋아하는 색을 하나씩 고르게 된다. 에디터는 보라색을 골랐다. 그리고 그 색 뒤에 적힌 시한 구절. 큰 말은 아니지만 작은 위로가 된다. 컬러는 오늘도 우리들을 매혹할 것이고, 어떤 컬러는 우리를 괴롭히기도 할 것이다. 어떤 색은 배경이 될 것이고, 어떤 색은 그 배경 위에서 시선을 빼앗을 것이다. 이 전시 자체가 사진을 찍기 좋은 포토스팟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보다 밖에 나가 카메라 렌즈를 돌려볼 것을 추천한다. 분명 마음에 드는 색, 그리고 오직 그 자리에서 당신만 볼 수 있는 색이 있을 것이다. 린 더글라스나 예너 토룬처럼 말이다. 천천히 바라보자. 그리고, 찰칵.
 

 

저작권자 ⓒ Deco Journal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